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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바라보다/낭만적 그녀 편

변화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고, 그것이 바로 과학자가 몰락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한테 다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 지식의 유효성이 끝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지요. 그런 태도로부터 벗어나는 게, 21세기 문화현상인 웹소설을 대하는 21세기 사람들의 태도라고 봅니다."

『웹소설 작가의 일』(김준현, 한티재)에 나오는 이야기다. 저자는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했고, 종이책 출판 시절부터 소설을 써 왔으며, 또 현재 웹소설 특강을 진행하고, 직접 네이버 등에 웹소설을 연재하며 작가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웹소설이 기존 소설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대해서 남다는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현대소설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연구자 시절에는 교수들로부터 무척 핀잔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이제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사랑의 대상도 사랑의 본질도 변하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생각은 꾸준히 변해야 마땅하다. 최근에 2016년에 내 블로그에 올린 어느 글의 일부를 인용해서 나를 공격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20대들이 저주에 가까운 막말로 나를 공격하기도 했다. 달라붙어서 해명을 하기도 그렇고 공격하기도 그래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급기야 블로그의 그 글을 비공개로 바꾸고 난 다음에야 조용해졌다.

나는 웹소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대세가 될 것으로 보았다.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라는 기획에 선뜻 동의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 선생의 기획이니 믿었다. 내가 김봉석 선생과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그와 편집자에게 맡겼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내면서 어떤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요다’라는 출판 브랜드를 만들었다. 요다는 2017년 12월에 처음 책이 출간됐다. 『회색 인간』의 김동식 작가를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나를 공격하던 메뚜기떼들은 내가 엘리트문학에 빠져 웹소설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다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앞뒤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인용한 문구만 읽으면 그럴 소지가 없지 않지만 그들은 문해력이 너무 부족했다. 단지 비꼬기 위해서 쓴 글을 내 생각이 온전히 그런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잠잠해지고 있다.

<기획회의>는 올해의 키워드로 “주류가 된 장르”릅 꼽았다. 편집자들은 선정 이유를 이융희 텍스트릿 팀장에게 청탁했다. 옳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없을 수 없다. 나는 그것을 『한국 출판계 키워드 2010~2019』에 썼다. 나는 과거의 엘리트문학과 지금의 서브컬처를 상하의 개념으로 나누고 서로 우위에 있다고 싸울 것이 아니라 공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브컬러의 'sub'에는 ‘inter’의 개념도 내포되어 있다. ‘서로의’ ‘상호 간의’라는 뜻도 갖고 있으니 중간에서 서로 연결한다는 개념이라고 말이다.

한때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문학, 역사, 철학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는 학자들이 대거 동원됐다. 그런 그들은 곧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과학기술 혁명 시대에 인문학은 변해야 했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마당에 조선시대의 문사철 논리로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었다. 곧 인문학 담론은 과학적 지식을 겸비한 인문학자들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서브컬처의 이론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융희 팀장은 글에서 올해 10여 권이 출간됐다고 했다.

아즈마 히로키는 가라타니 고진 이후 최고의 신예 문예비평가로 평가받았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은 나도 읽었다. 그러나 아즈마도 이제는 낡은 인물로 평가받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의 우노 츠네히로를 추천했다. 아즈마가 20세기 초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우노는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내가 일본에서 사와서 오퍼를 넣었을 때는 이미 늦었던 아픔이 있었다. 어떤 이는 『자동화 사회』(베르나르 스티굴러)와 『중국애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허욱)부터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이런 책들이 인간의 본질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인문학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계속)